문화예술계 혁명의 아이콘.. 문화로 정신을 깨우는 코바나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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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혁명의 아이콘.. 문화로 정신을 깨우는 코바나컨텐츠
  • 시사이코노미TV
  • 승인 2019.12.1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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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 최고의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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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 ‘야수파 걸작展’

2019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새로운 세상이 열리다 :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현대미술의 보고, 프랑스 트루아 현대미술관의 회화, 드로잉, 사진, 조각, 영상, 자료 등 140여점의 전시회가 2년간의 미술관 리모델링을 기회로 대한민국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되었다.

프랑스 트루아 현대미술관.. 국가 중요 보물 컬렉션이 있는 문화유적

파리에서 1시간여 걸리는 트루아 시는 전쟁의 피해가 전혀 없어 12세기로부터의 건축물이 놀라울 정도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문화유산 도시이다.

현재 트루아 현대미술관 역시 12세기의 건축으로 1909년 국가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그 이후 1982년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트루아 현대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 국가 중요 보물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트루아 현대미술관은 2년간의 미술관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화의 상징인 빅 벤야수파 최고의 걸작을 탄생시키다.

빅 벤, 그 위대한 시작

20세기 초 당시 예술가들에게 시대의 상징이자 새로움의 상징인 빅 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화두였다, 원래 궁전으로 사용되었던 영국의 빅 벤은 세계 최초 의회로 바뀌었고, 높은 시계탑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런던은 산업혁명으로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고 있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쏟아지는 태양은 시대의 강렬한 에너지를 의미하며, 강조된 시계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말하고 있다, 앙드레 드랭은 전에 없던 시각으로 20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빅 벤의 시대적 메시지를 탄생시킨 것이다. 속도를 내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재와 미래의 찬란한 기대가 녹아져 있는 이 작품은 야수파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남았다.

나는 조화롭고, 영원하며, 온전히 새로운 것을 찾고 있어요.”

- 앙드레 드랭 -

André Derain, Big Ben, 1906 / COVANA CONTENTS
André Derain, Big Ben, 1906 / COVANA CONTENTS

드랭은 세잔 이후 나를 가장 자극했고 열광시켰으며, 나를 깨우치게 한 예술가이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 -

화가의 등급을 나눌 수는 없지만 대가는 노력만이 아닌 천성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탁월함과 함께 기존의 틀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담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라고 해서 모두 그런 기질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드랭에게는 그 대가의 자질이 있어요. 만약 드랭이 공대를 졸업해 일류 기술자가 된다고 해도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위대한 대가를 한 명 잃게 되는 것입니다.”

- 앙리 마티스 -

André Derain, Hyde Park, 1906 / COVANA CONTENTS
André Derain, Hyde Park, 1906 / COVANA CONTENTS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우리는 모두 혁명가이다.

외면받던 시대의 주인공들

우리는 누구나 세상의 중심에 선 주인공이다.

내가 존재할 때 이 세상 모든 것이 의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죽음의 모습까지 나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더구나 죽은 후 일어날 자신의 존엄성 훼손에 대해서도 대단히 염려한다. 어찌 보면 인간은 행복한 삶을 꿈꾸기에 앞서 끝없이 일어나는 두려움을 최소화하는데 더욱 최적화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100년 전 20세기 초는 지나간 시대의 몇 백년을 압축할 만큼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분야의 혁신이 속도를 내어 전개되었다. 위대한 또 하나의 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혁신의 무대 위에서 현대미술도 탄생되었다. 하지만 산고를 치러야 생명이 태어나듯 현대미술이야말로 대단한 고통 속에 피어났다. 지금, 현대미술이 가진 엄청난 위상에 비하면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한발치 먼저 그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한 눈에 보는 현대미술의 출발, 야수파 입체파 계보
한 눈에 보는 현대미술의 출발, 야수파 입체파 계보

야수 발톱으로 할퀸듯한 흉측한 그림은 야수파로 그림이 다 상자네.”라는 조롱은 입체파를 탄생시켰다.

그럴듯한 고상한 미술사적 언어 대신 싸늘한 비난에서 유래한 이름이 된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

Hanri Matisse, Le femme au chapeau, 1905
Hanri Matisse, Le femme au chapeau, 1905

마티스는 현대의 선구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음란하고 외설적이며 유치한데다 무신론자적인 경향을 보이는 쓰레기 작가들의 수괴일 뿐이다.”

- NEWYORK TIMES -

밑그림이 초보 수준이야. 어린애 그림만도 못하지, 원근에 깊이도 없고 구름은 노랗고 피부는 보라색이야. 그게 다 틀렸어. 그런데 말이야.. 너무나도 훌륭해.. 말이 안 되지만 생명력이 넘쳐. 게다가 이들은 재능이 아니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잖아. 난 여태껏 이렇게 혁명적인 작품은 한 번도 못 그려봤어. 사진이 등장했으니 화가가 더 이상 사람들 생김새를 묘사할 필요가 없잖아? 이들은 모든 것에 대해 더 깊은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거라고.. 정말로 모든 규칙을 다 뒤틀었지..“

- 파블로 피카소 -

고통스러울 만큼 현란한 색채, ‘갈등을 빚어낸 초상화

- 모리스 드니 -

왜 하늘이 꼭 파란색이어야 하는가. 풀은 왜 반드시 초록색이어야 하는가.”

- 앙리 마티스 -

어느 날엔가 저 커다란 캔버스 뒤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한 피카소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이뿐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가장 괴롭힌 건, 바로 가난이었다. 아이 셋을 둔 35세의 아버지 마티스는 차라리 그림을 그만두는 게 낫겠다.”라고 자책했고, 스페인 출신의 눈만 큰 피카소는 함께 누울 수 없는 비좁은 방에서 친구와 교대로 눈을 붙였다. 이들과 함께 실험적인 화풍을 추구한 화가들은 지도한 가난에 못 이겨 귀족의 초상화, 부자들의 거실을 꾸며줄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리는 몽마르트의 화가로 돌아갔다.

주인공들에게 조명을 비춰준 결정적인 조력자 화상

그러나 외톨이였던 그들 곁에는 조용히 그들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몇 사람이 있었다. 미국에서 온 스타인 여사는 모든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작품을 구입해 그들의 생활고를 해결해주었는데, 그러한 스타인의 그림 수집은 그림에 대한 투자라기보다는 친구로서의 우정이기도 했다. 그림을 판 값으로 마티스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했고, 피카소는 잠을 잘 집을 얻었다.

그런 탓으로 그녀의 집은 늘 예술가들로 넘쳐났다. 사람을 좋아하고 품어주는 넉넉한 성품으로 하나 둘 초대해 파티를 연 것이 20세기 최고의 사교계 여왕이 된 것이다. 결국 스타인 여사의 집은 피카소나 마티스가 만나 서로의 성장을 이끌어내고 위대한 미술을 탄생시킨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볼라르와 칸바일러는 전문 화상으로 무명의 그들에게 과감한 투자를 했다, 그림을 통째로 구입해 그들의 외상 물감 값을 갚을 수 있게 했고 그들의 잠재적인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게끔 끊임없이 격려했다.

그러나 세계대전으로 인한 나치의 유대인 박대는 독일계 유대인인 칸바일러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는 피난을 가면서도 화가들과 맺은 독점 계약서를 파기해주어 화가들이 다른 화랑과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데, 화가들은 이러한 칸바일러의 감동적인 배려에 눈물을 흘렸다.

이름도 없던 세잔, 피카소, 마티스, 드랭을 발굴해 스타로 만든 유대인 화상 볼라르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예견했다. 그래서 성급히 큰 가방에 자신이 수집한 그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넣어 비서에게 자신의 비밀금고에 넣어두라고 지시하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당시 나치가 미술품을 강제로 수탈해 불살라버리는 일이 빈번했던 탓에 볼라르는 화가들의 위대한 유산을 지켜내야 했기 때문이다.

오지 않는 금고 주인을 기다리다 못한 은행은 결국 1989년에 비밀금고를 열게 되었는데 금고 안 가방을 연 은행 직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큰 가방 안에서는 돈이 아닌 현대미술에서 사라진 귀중한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있던 피카소, 마네, 드랭의 중요 시기의 작품들이 새 생명을 가지고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그 작품들로 전 세계 미술계는 더없는 충격을 받았다.

어려운 시절의 화가들을 조건 없이 후원해 무모하다는 비난을 산 볼라르는 화가들이 감사의 표시로 그려준 초상화가 가장 많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만큼 화가와 한 몸이 되어준 고마운 화상이었다.

이렇듯 당시 외면당한 화가들이 현대미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들을 향한 화상들의 지극한 사랑이었다. 비록 화가들은 가난했지만 그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화상들은 그들의 무모한 도전을 받아주었다.

느리면 진부하고 앞서가면 무모하다

현대미술을 창시한 화가들은 미술학교는 다닌 적도 없고 설사 입학했더라도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부적응자들이었다. 게다가 손짓 발짓으로 소통해가며 언어를 익혀갔던 외국인 출신들과 물감 값을 독촉하는 상인과 밤낮으로 실랑이를 했던 그들은 누가 봐도 한심하고 초라했다.

그러나 그들은 앞서갔다.

최고의 국립 미술학교를 졸업한 탄탄한 배경의 화가들이 부와 명예를 거머쥘 때 앞서가는 그림들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무모한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단 한가지 무기가 있었다.

그림으로 한번,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한 맺힌 야심이었다.

모든 규칙을 벗어난, 색채와, 형태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그려내겠다고 하는 그들의 이런 무모하고도 혁신적인 그림은 시대의 돌연변이가 아닌 영적인 감각으로 시대의 맥락을 꿰뚫어보는 최고의 무기였다.

서시히 그들의 진보된 그림에서 사람들은 시대를 발견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의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들의 예술성을 미리 알아본 듯이 얄미운 허세를 내보이기도 했다.

작은 진실이 거대한 욕망을 이긴다.

혁명가는 시대의 예언자

결국, 그들은 무모한 혁명은 성공을 거두었다.

혁명의 시대, 20세기 초반 정치인은 혁명의 수단으로 세계전쟁을 일으켰고, 화가는 그림으로 혁명했다. 예술 혁명의 중심에는 타오르는 욕망이 아닌 세상의 진실을 찾아 근원적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절규가 있었다.

세상을 더 멀리 보는 은 진정한 혁명가만의 이기 때문이다.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은 현대미술을 탄생시키기 위한 그들의 위대한 고통과 위대한 여정을 담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보다 아주 조금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우리에겐 우리보다 더 어려운 환경을 헤치고 이겨낸 그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는 우리 역시 각자가 혁명의 숙제 아래 놓여있는 외로운 혁명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코 나 혼자의 힘이 아닌 모두와 협력하고 함께해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커다란 교훈은 자만하고 욕망으로 가득 찬 우리에게 한줄기 경고를 해주기도 하는 고마운 역사적 사례이다.

문화예술기업 코바나컨텐츠.. 함께 해서 더 커지는 존중하는 문화

우리는 수준 높은 문화 전시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문화예술기업 코바나컨텐츠의 앞으로의 역할을 또다시 기대해 본다.

시대를 알아야 미술이 보이고 미술을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김귀성  fundmagaz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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