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진도의 금강 '金骨山'.. 금골산 오층석탑, 해언사 그리고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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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진도의 금강 '金骨山'.. 금골산 오층석탑, 해언사 그리고 마애여래좌상
  • 시사이코노미TV
  • 승인 2020.12.2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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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를 건너 진도군 초입 군내면 금골리에 위치한 금골산
금골산 주차장 → 오층석탑 → 해언사 → 정상 → 마애여래좌상
첫 눈이 내린 금골산 전경. 2020.12.14
첫 눈이 내린 금골산 전경. 2020.12.14
진도 군내면 금골리 금성초등학교 교정 안에 위치한 금골산 오층석탑
진도 군내면 금골리 금성초등학교 교정 안에 위치한 금골산 오층석탑
보물 제529호 금골산 오층석탑.. 석탑 모서리에 보석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보석들을 떼어갔다고 전해 들은 기억이^^
보물 제529호 금골산 오층석탑.. 석탑 모서리에 보석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보석들을 떼어갔다고 전해 들은 기억이^^
고려때 이곳에 해원사(海院寺) 또는 해언사(海偃寺)라고 불리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현재는 이곳 금성초등학교 뒷편에 해언사가 복원되어 있다.
고려때 이곳에 해원사(海院寺) 또는 해언사(海偃寺)라고 불리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현재는 이곳 금성초등학교 뒷편에 해언사가 복원되어 있다.
금골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안내판에 소박하게 서 있다.
금골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안내판에 소박하게 서 있다.
해언사로 올라가는 진입로
해언사로 올라가는 진입로
해언사 왼쪽 뒷편에 위치한 작은 동굴
해언사 왼쪽 뒷편에 위치한 작은 동굴
궁금해서 발길을 옮겨.. '저장창고'려니 하고 돌계단을 밟고 굴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았다.
궁금해서 발길을 옮겨.. '저장창고'려니 하고 돌계단을 밟고 굴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았다.
동굴로 들어가는 통로는 겨우 한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폭이다.
동굴로 들어가는 통로는 겨우 한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폭이다.
작은 불상이 하나 놓여 있다.
작은 불상이 하나 놓여 있다.
해언사 전경으로 사진에 보이는 3개의 건축물 뒤에 대웅전이 따로 자리하고 있다.
해언사 전경으로 사진에 보이는 3개의 건축물 뒤에 대웅전이 따로 자리하고 있다.
해언사를 빠져나와 금골산 정상과 산중턱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 가는 길 초입 안내판이 금골산 정상으로 안내한다.
해언사를 빠져나와 금골산 정상과 산중턱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 가는 길 초입 안내판이 금골산 정상으로 안내한다.
금골산 정상에서 바라본 둔전 들녘과 금골마을(산 바로 아래) 둔전마을(저수지 오른편) 연산마을(우)이 보인다. 금골마을은 선진농협과 연쇄점, 파출소, 우체국, 보건소, 주유소, 미니스톱 편의점, 귀농귀촌인 쉼터,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금골권역사업 지원센타 등이 모여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군내면의 중심마을이다.
금골산 정상에서 바라본 둔전 들녘과 금골마을(산 바로 아래) 둔전마을(저수지 오른편) 연산마을(우)이 보인다. 금골마을은 선진농협과 연쇄점, 파출소, 우체국, 보건소, 주유소, 미니스톱 편의점, 귀농귀촌인 쉼터,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금골권역사업 지원센타 등이 모여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군내면의 중심마을이다.
금골산 정상에서 바라본 둔전 들녘.. 오른편에 금성초등학교와 왼편에 군내중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금골산 정상에서 바라본 둔전 들녘.. 오른편에 금성초등학교와 왼편에 군내중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마애여래좌상 동굴에 발을 딛는 순간에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이다.
마애여래좌상 동굴에 발을 딛는 순간에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이다.
금골산 산중턱에 배꼽부분이 깊게 패인 자국이 남아있는 마애여래좌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에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금골산 산중턱에 배꼽부분이 깊게 패인 자국이 남아있는 마애여래좌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에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진 동굴안은 누군가가 빗자루로 단정하게 정리를 한 듯 정리되어 있다. 빗자루를 찾아보아도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어딘가에 숨겨 놓은 것 같다. 마애여래좌상 바로 아래 돌 위에 유자 한 개가 놓여 있다.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진 동굴안은 누군가가 빗자루로 단정하게 정리를 한 듯 정리되어 있다. 빗자루를 찾아보아도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어딘가에 숨겨 놓은 것 같다. 마애여래좌상 바로 아래 돌 위에 유자 한 개가 놓여 있다.
문화재자료 제110호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어리적 배꼽 구멍으로 돌을 던지곤 했는데, 돌이 들어가서 그대로 있으면 아들을 얻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딸을 얻는다는 내려오는 어르신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문뜩 생각났다.
문화재자료 제110호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어리적 배꼽 구멍으로 돌을 던지곤 했는데, 돌이 들어가서 그대로 있으면 아들을 얻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딸을 얻는다는 내려오는 어르신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문뜩 생각났다.

기암절벽이 신비로운 진도의 금강산.. 금골산

한걸음만 잘못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금골산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유명한 석수 장인이 수 만년을 거쳐 가며 예술품을 조각해 놓은 듯 층층인가하면 구멍이고, 구멍인가 하면 기둥이며, 사람인가 하면 짐승 같은 형상이다.

기암의 빛깔도 황색, 흑색, 백색, 회색 등으로 이루어져 그 아름다움은 표현할 말이 부족할 정도의 아름답고 기이한 산이다.

금골산 아래에는 금성초등학교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그 곳에 위치한 보물 제529호로 지정된 5층석탑은 진도의 기나긴 역사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산중턱에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쌀 구멍 전설의 굴암이 있고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둔전 평야와 동서남북 펼쳐진 산과 봉우리들은 한 폭의 한국화처럼 아름답다.

 

마애여래좌상 쌀 구멍 전설을 스토리텔링하여 브랜드화 하자!!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쌀 구멍 전설을 스토리텔링하여 둔전평야에서 수확한 친환경재배 쌀을 '금골산 배꼽쌀'로 브랜드화하고 공급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산행 코스

금골산 주차장 → 금성초등학교 금골산 오층석탑 → 해언사 → 요사채 서쪽 → 사면길 → 200M → 주능선 → 금골산 정상 → 바윗길 → 석굴(마애여래좌상)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금골산에 있는 조선 전기 마애여래좌상으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금골산(金骨山)[해발 193m]에는 수도처로 사용된 세 개의 굴(상굴·서굴·동굴)이 있는데, 이중 동굴(東窟) 안에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굴은 입구가 너른 편이며 서너 명이 기거할 수 있는 크기이다. 마애불은 굴의 한가운데 남동 방향으로 새겨져 있으며, 진도의 비옥한 토지와 한려수도의 장쾌한 경관을 바라다보는 위치에 놓여 있다. 마애불이 있는 금골산 초입에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해원사(海院寺)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 금성초등학교 안에 있는 오층석탑은 해원사의 유물로 전한다. 인근에는 해언사(海堰寺)가 있다.
『속동문선』에 실려 있는 이주(李胄)의 「금골산록」에 의하면, 조선 전기 1469년부터 약 3년 동안 진도군수를 역임한 유호지(柳好池)의 발원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청회색 암석 알갱이들로 매끄럽지가 않고 표면이 쉽게 부서지는 화산암 계열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낮은 부조로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전체적으로도 어깨 폭이 좁고 목이 짧다. 두상은 고려 후기 불화에 보이는 세 개의 타원을 좌우와 중앙에 올린 삼산형(三山形)이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 왼손을 정좌한 다리 위로 올린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가운데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취한다. 손은 비례에 맞지 않게 작은 편이며, 왼손이 아래로 내려가 있다. 복식은 승기지(僧祇支)와 복견의(覆肩衣), 그리고 대의와 군의를 착용한 일반형이며, 승기지의 상단은 수평을 이룬다.
오른쪽 어깨자락에 파상문이 있고 왼쪽 어깨 자락에는 Ω형 주름이 있다. 가부좌한 다리 사이에 부채꼴 주름이 있고, 대좌는 표현되지 않았다. 이 상의 자세와 수인, 복식 등은 고려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전형적인 조선 전기 불상의 형태로 보인다.
굴 속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이다. 인근 고군면의 향동리 마애불 또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와 유사한 입지를 보이고 있다. 두 상은 형식적으로는 유사한 면이 없으나, 각기 세 개의 굴이 있는 산에 위치하고 불상에서 수도에 전념할 수 있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는 동일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진도군에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두 점밖에 없으며,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진 데에는 향동리 마애불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불상에 비해 어깨가 좁고 세속적인 인상을 지닌 것으로 고려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불상임을 알 수 있고, 또한 「금골산록」의 관련된 기록을 통해 마애불의 제작 연대와 제작자, 그리고 아미타 수인을 하였으나 미륵으로 인식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양식과 문헌 두 가지 면에서 조선시대 마애불 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진도문화원

 

GUISU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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