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속 물' 마시는 마을에 식수 공급하니.. 대기업 투자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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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속 물' 마시는 마을에 식수 공급하니.. 대기업 투자 따라왔다
  • 시사이코노미TV
  • 승인 2020.11.0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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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경쟁시대 딥체인지] ①개도국 식수공급 '글로리엔텍'
정수로 얻은 탄소배출권 판매해 수익.. ESG '기후산업' 주목
서울·사트키라=뉴스1 문창석 기자

편집자주 바야흐로 그린시대다. 환경은 이제 기업에게 ‘보호’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됐다. 환경(E)과 함께 사회(S)·지배구조(G)는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착한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원한다. 뉴스1은 ‘ESG’ 사례를 살펴보고 기업이 왜 필수 경영 요소로 선택해야 하는지 조명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방글라데시 쿨나주(州) 사트키라의 한 정수시설에서 현지 여성이 물을 받고 있다. 글로리엔텍 제공
방글라데시 쿨나주(州) 사트키라의 한 정수시설에서 현지 여성이 물을 받고 있다. 글로리엔텍 제공

로리타 사르카르는 항상 집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연못에서 물을 길어와 마셨다. 가정주부인 그는 남편과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 때도 이 물을 썼다. 다소 불투명하고 냄새가 났지만, 집 근처 우물에서 보던 검붉은 색 물보다는 나았다.

그가 사는 케스라(Khesra)는 방글라데시 남부 쿨나주(州)의 작은 도시 사트키라(Satkhira)에서도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외딴 지역이다. 작은 몸으로 힘들게 물을 길어와도, 시골 마을에선 식수 저장이 마땅치 않다. 건기에는 연못이 말라 물을 길어올 수도 없다. 그럴 때면 사르카르와 아이들은 우물물을 마셔야만 했다. "그 결과는 더 나빴어요. 저와 가족을 더욱 병들게 했죠."

사르카르가 남들보다 특별히 불행한 건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전체 국민(1억6400만명) 중 도시에서 공공 상수도로 물을 공급받는 국민은 약 11%인 1800만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억4600만명은 사르카르처럼 여전히 연못에 고인 물이나 염분이 섞인 지하수,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그대로 마신다. 설사·콜레라·소아마비·장티푸스 등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하는 건 이곳에서 평범한 일이다.

세글로리엔텍은 이렇게 공공 상수도가 없는 개발도상국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국내 스타트업이다. 현지 원수(源水)를 분석한 후 수질별로 필터를 조합해 정수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관리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식수를 무료로 공급한다. 현재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캄보디아·미얀마 등 11개국에서 50여개의 마을 단위 정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사설 정수시설이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식수를 살 돈이 없어 우물로 향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집단중독 사건'으로 꼽는 방글라데시의 우물에는 지리적 특성상 비소·철 등 중금속이 섞인 경우가 많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선 비소 중독으로 매년 3000명 이상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발리아(Balia) 주민 조이뎁은 미래의 비소 중독보다 당장의 갈증이 더 무섭다. "급할 때면 우리 가족은 비소가 섞인 물을 마셨습니다. 안전하지 않다는 건 알았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방글라데시의 한 마을에서 길어올린 검붉은 색의 지하수. 주민들은 이 물을 그대로 마신다. 글로리엔텍 제공
방글라데시의 한 마을에서 길어올린 검붉은 색의 지하수. 주민들은 이 물을 그대로 마신다. 글로리엔텍 제공

글로리엔텍은 이렇게 공공 상수도가 없는 개발도상국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국내 스타트업이다. 현지 원수(源水)를 분석한 후 수질별로 필터를 조합해 정수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관리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식수를 무료로 공급한다. 현재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캄보디아·미얀마 등 11개국에서 50여개의 마을 단위 정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무료로 나눠주지만 자선이 아닌 엄연한 수익사업이다. 상수도가 없는 지역에서 안전한 방법은 물을 끓여 마시는 건데, 이 경우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된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온실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정수 시스템으로 식수를 생산해 개발도상국에 공급하면 그 양에 비례하는 탄소배출권을 발행한다. 그렇게 얻은 탄소배출권을 필요한 기업에 판매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글로리엔텍에 따르면 현재 정수 시스템에선 물 1톤당 179kg의 이산화탄소가 감축된다. 이 경우 CPA 1곳(식수 공급설비 10개소)으로부터 연 1만3131톤의 탄소배출권을 얻을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일 기준 탄소배출권은 톤당 2만2300원이다. 1년에 2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려 연 1억5000만원인 시설운영비를 충당하고도 남는다.

 

정수시설을 거친 물. 오른쪽으로 갈 수록 점점 깨끗해지고 있다. 글로리엔텍 제공
정수시설을 거친 물. 오른쪽으로 갈 수록 점점 깨끗해지고 있다. 글로리엔텍 제공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줄여 탄소배출권 가격이 일시적으로 낮아졌지만 올해 초에는 톤당 4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코로나19에서 벗어나 공장들이 정상 가동되면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박순호 글로리엔텍 대표는 "수익은 식수 설비의 유지·관리와 신규 설비 구축비용으로 재투자돼 깨끗한 식수 공급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은 정수 시스템이 자신들의 삶을 바꿨다고 입을 모은다. 이전에는 돈을 쓰지 않고도 100% 깨끗한 물을 얻는 건 상상조차 못 하던 일이다. 카나이디아(Kanaidia) 주민인 람프로샤드는 "마을에 정수시설이 생긴 후 진짜 물의 맛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우물물을 마셔야 했던 사르카르는 "정수시설 덕분에 비싼 물을 사지 않아도 된다. 그 돈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있다"며 감사해했다.
 

방글라데시 쿨나주(州) 사트키라의 한 정수시설에서 현지 주민들이 물을 받고 있다. 글로리엔텍 제공
방글라데시 쿨나주(州) 사트키라의 한 정수시설에서 현지 주민들이 물을 받고 있다. 글로리엔텍 제공

글로리엔텍은 최근 투자를 받으면서 사업을 확대할 기회를 얻었다. 정유·석유화학 기업인 에쓰오일은 사업상 탄소배출권이 필요한데, 글로리엔텍에 투자해 연 1만3000톤의 탄소배출권을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우선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환경(Environment) 관련 사업을 하자 대기업의 투자가 따라온 것이다. 대표 포함 직원이 9명밖에 안 되는 작은 스타트업에 있어선 큰 성과다.

환경이란 가치가 점차 중요해지고 소비자와 기업들도 이를 우선순위에 놓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런 '기후산업'은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 전망이다. 박 대표는 "지난 2016년 시작할 때만 해도 사업의 실체가 없어 설명하는 데 어려웠지만, 이젠 저희와 사업을 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졌다"며 "기업들이 이전보다 지속가능경영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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